한국 경제 근간 제조업, AI로 혁신 활로 찾다

2023-02-23

- AI 기반 예지보전 도입해 다운타임 방지
- 운용·정비 비용 획기적으로 단축
- LG에너지솔루션·삼성엔지니어링, AI 도입해 생산성 향상
- "제조업 성장 위해선 AI 기반 데이터 분석·진단·예측 도입 필요"



"제조업은 우리 경제의 근간입니다. 제조업 부흥이 곧 경제 부흥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식'에서 한 말입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제조업은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제조산업이 한국 경제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지요.

한국산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제조 혁신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큰 과제입니다. 정부에서 스마트공장 보급사업에 계속 투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제조업 성장의 활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떠오르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AI타임스>는 2021년 한 해 동안 제조업에 녹아든 다양한 AI 기술을 취재했습니다. 이중 주요 기술을 모아 소개하겠습니다.


공장 다운타임 해결사, AI 기반 예지보전

AI 중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예지보전입니다. AI 예지보전이라고도 하는데요. AI를 이용해 공정에 사용되는 부품과 장비의 수명 및 고장 여부를 미리 파악해 조치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예지보전이 중요한 이유는 공장의 다운타임(Downtime)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운타임은 고장으로 인한 장비 가동 불가 시간을 얘기해요. 장비 고장으로 해당 공정이 멈춰 선 것을 의미하죠. 


제가 라면 공장 대표라고 가정해봐요. 오늘까지 라면 300개를 만들어 납품하기로 했어요. 공장에 있는 설비로 하루에 500개 라면을 만들 수 있어 충분하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장비가 고장이 나버렸어요. 다운타임이 발생한 거죠. 100개까지밖에 못 만들었는데 말이죠. 납품을 받기로 한 기업은 당연히 화가 났겠죠? 피해보상비를 요구하고 공장 신뢰도도 확 낮아지고 말았어요.

가격이 비싼 반도체라면 어떨까요? 반도체 공장은 잠시라도 멈추면 생산하던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해요. 규모에 따라 억에서 조 단위의 금액 피해가 발생하죠. 이처럼 다운타임 방지는 제조업이 가진 숙제랍니다.

예지보전은 장비나 부품의 수명이 다해가거나 고장 징조가 보일 때 이를 파악해 미리 조치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센서 등으로 장비와 부품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AI가 분석해 고장 발생 여부를 미리 알려주죠. 

장비나 부품이 수명이 다하게 되면 이상 현상이 발생하게 돼요. 작동하는 소리가 커지거나 진동이 세지는 경우가 발생하죠. 이러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고장 유무를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지금까지는 이러한 판단을 숙련된 직원이 했어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고장 징조를 파악해 부품 교체 등을 했어요. 하지만 정확하진 않았죠. 부품을 보다 빨리 교체하게 되면 수명이 다 되지 않은 부품을 버려야 해 비용이 낭비됐고요, 부품을 늦게 교체하게 되면 장비가 고장나 다운타임이 발생했어요.

이 문제를 AI가 극복하게 된 것이죠. 사실 예지보전은 제조업에서 반드시 해야 할 숙제였어요. 장비와 부품 고장을 미리 진단할 수 있는 경험 있는 직원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경험을 AI에 학습시켜 인력 부재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원프레딕트, 국내 예지보전 기술 선도


예지보전 기술을 개발해 공급하는 기업은 원프레딕트, 엠앤디테크놀로지, 아비바 등이 있습니다. 원프레딕트와 엠앤디테크놀로지는 국내 기업이고 아비바는 영국 기업이지요.

원프레딕트는 국내 예지보전 선도 기업으로 볼 수 있는데요. 예지보전 솔루션 '가디원(GuardiOne)'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다양한 설비의 고장 위험성과 잔여 수명을 예측하는 솔루션입니다.

가디원은 산업 설비에서 발생하는 진동, 전류, 속도, 음향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설비의 건전성을 예측하고 관리합니다. 모터를 예로 들면, 모터에서 발생하는 소리나 진동, 전류 등을 통해 작동에 문제가 없는지, 수명은 얼마나 남았는지 등을 AI가 파악한다고 보면 돼요.

현재 이 솔루션은 에너지·발전·석유화학·제조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 적용돼 다운타임 최소화와 설비 가동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원프레딕트는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LG유플러스 등 주요 기관과 기업에 해당 기술을 공급했다고 밝혔는데요.

한국서부발전의 경우 화순풍력단지에 해당 기술을 적용해 메인베어링, 기어박스, 발전기 고장 등을 최대 6개월 앞서 예측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풍력발전기 1호기당 매년 약 5억원 가량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네요.

원프레딕트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올해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로부터 '2021년 상반기 우수 기업연구소'로 공식 지정되기도 했어요. 우수 기업연구소는 과기정통부가 매년 2회 기술혁신 역량이 우수하고, 기술사업화 성과가 탁월한 기업부설연구소를 선정하는 제도입니다.


윤병동 대표는 "가디원 솔루션을 적용하면 기존 방식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설비 고장으로 인한 다운타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김동원 기자)

윤병동 원프레딕트 대표(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인터뷰에서 예지보전 기술을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해왔다고 밝혔어요. 그는 "가디원은 핵심 설비의 잠재적 이상에 대한 예측, 원인 추정, 처방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디지털 브레인' 역할을 수행한다"면서 "이 디지털 브레인을 설비에 적용하게 되면 기존 방식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던 설비 고장으로 인한 다운타임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운용·정비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엠앤디테크놀로지·아비바, 차별화된 예지보전 솔루션 제공

엠앤디테크놀로지는 모터를 중점으로 고장·진단 솔루션을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진동분석과 전류분석 기술로 모터 고장 여부를 진단하지요. 

진동분석은 장비와 설비에 부착된 센서에서 취득한 진동 스펙트럼을 분석해 고장을 진단하는 기술입니다. 주요 장비와 설비에 진동센서 3~4개를 부착해 기계적 결함을 정밀 진단할 수 있습니다.

전류분석 기술은 모터 컨트롤센터(MCC) 내부에 측정기를 설치해 전압·전류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입니다. 측정기로부터 취득한 전류 스펙트럼을 분석해 고장을 진단합니다.

박성봉 엠앤디테크놀로지 대표는 "진동분석 기술은 기계 결함에 장점이 있고, 전력분석 기술은 전원 상태 결함에 강점이 있다"며 "해당 공장에 적합한 기술을 결합해 예지보전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국 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인 아비바도 국내에 AI 예지보전 기술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국내에서는 조선·해양 분야에서 친숙한 업체입니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해 국내 주요 조선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지요.

오재진 아비바코리아 대표는 7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비바가 제공하는 AI 예지보전 기술은 일부 기술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체적인 엔드 투 엔드(End to End) 솔루션을 제공해 타 기업의 기술과 차별된다"면서 "예측과 보전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시각화까지 지원한다"고 소개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커팅 공정에 딥러닝 기반 기술 적용

예지보전 외에도 제조업 기업은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는 국내 대기업의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해드릴게요. 참고로 이번에 소개하는 기업들은 AI 솔루션을 개발, 공급하는 매스웍스와 협업해 기술력을 갖춘 사례입니다.

배터리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제조공정 중 반제품을 자르는 커팅 공정에 딥러닝 모델 기반 PHM(Prognostics and Health Management)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커터 수명을 진단하고 고장 시점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했지요.


이정훈 LG에너지솔루션 선임연구원은 5월 열린 '매트랩 엑스포 2021'에서 "매스웍스코리아와 함께 배터리 커팅 공정에 AI 기술을 적용해 커터 교체 시점을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면서 "(해당 솔루션은) 95% 이상 정확도를 보여 비용 감소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커팅 공정은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배터리 전극을 절단하는 공정입니다. 커팅에 사용되는 커터는 수명이 다할 경우 전극 파열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데요. 이 문제로 작업이 늦어지고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등 부정 효과가 뒤따르게 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금까지 커터 수명교체 시기를 작업자 판단으로 결정했습니다. 작업자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고, 오류도 발생해 수명이 다하지 않은 커터가 교체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회사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스웍스코리아와 함께 AI로 수명교체 시기를 알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회사에 따르면, AI 모델은 교체 하루 전에 99% 정확도로 커터 수명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교체 3일 전에는 85% 정확도로 수명을 알려줄 수 있다고 하네요.


현대제철, 취성 파면율 AI 기반으로 정확히 평가 

현대제철은 취성 파면율 측정 정확도를 AI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동화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취성 파면율은 탄성한계 내의 하중으로 인해 파괴된 물체의 면이 전체 물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강판 및 유전용 강관·송유관을 생산하는 현대제철은 고강도 강관의 기계적 물성을 정확히 측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요. 수십에서 수백 킬로미터(km)에 달하는 송유관은 아주 작은 균열이 발생할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현대제철은 정확한 측정을 위해 새로 개발한 강판에 대해 DWTT(Drop Weight Tearing Test) 테스트를 진행해 강도를 측정해왔어요. DWTT는 강판 위에 높은 위치에 달린 해머를 떨어트려 생기는 파면을 분석, 기계적 물성을 평가하는 테스트입니다.

지금까지 취성 파면율은 시험원의 개별적 판단에 의존해 측정됐어요. 그만큼 정확도에 대한 의문이 남았지요. 이 의문을 제거하기 위해 현대제철은 매스웍스의 매트랩 솔루션을 활용, 다양한 이미지 프로세싱 기법 기반의 취성 파단면 구분 기법 개발에 나섰어요.

회사는 DWTT 강판 파단면에서 취성 파면, 연성 파면(파괴되지 않고 늘어나는 성질), 역 파면(강판과 해머가 직접 충돌된 부분), 배경을 픽셀 단위로 구분해내는 고정밀 딥러닝 기술을 개발해 DWTT 분석 자동화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현대제철 측은 이 기술로 송유관 등의 기계적 물성을 정확히 측정, 균열도 문제 등을 사전 조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태창 현대제철 책임연구원은 11월 열린 '매트랩 딥러닝 유저 데이(MATLAB Deep Learning User Day)'에서 "석유 추출 및 운송용 강관 개발 시 기계적 물성의 완벽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취성 파면율 측정 시험에서 매스웍스 솔루션을 활용해 DWTT 분석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했다"며 "성능이 입증되면 실제 평가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 설계도면 분류하는 AI 모델 개발

끝으로 삼성엔지니어링 사례를 소개해드릴게요. 삼성엔지니어링은 AI를 활용한 '설계문서 분류 모델'을 개발했어요. 이번 모델로 문서 분류 작업을 자동화해 작업 소요시간을 2~3주 절감했다고 밝혔지요.

삼성엔지니어링이 개발한 AI 모델은 화공플랜트 설계도면에 적힌 설계 요구사항 노트의 의미를 분석, 담당 영역별로 노트를 전달하는 모델입니다. 수백 개의 설계 P&ID(Piping and Instrument Diagram) 도면의 수십 개 설계 요구사항 노트를 AI가 분석해 공정, 배관, 제어, 토목, 건축 분야로 분류합니다.

최건용 삼성엔지니어링 화공기술센터 프로는 "설계 요구사항 노트를 AI가 분류하면서 설계 담당 엔지니어가 담당 엔지니어에게 요구사항을 분류해 전달할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이를 통해 화공플랜트 설계 과정에 걸리던 시간을 2~3주 단축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AI 모델을 개발하기 전에는 규칙 기반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해요. 이 프로그램은 P&ID 도면 설계 요구사항 노트에 기재된 '파이프(pipe, 배관 영역)', '밸브(Valve)', '장비(Equipment)' 등의 단어를 기준으로 문서를 분류했다고 해요. 기존에 사용됐던 단어는 정확히 분류했지만,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단어가 있을 경우 분류 작업을 완성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죠.

반면 이번에 개발한 AI 설계 요구사항 문서 분류 모델은 예측 범위가 넓어 모든 경우를 분석하기 쉽고, 정확도 역시 높다고 합니다. 개발 역시 빠르게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최 프로는 "룰 기반 프로그램은 개발에 3~4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AI 모델은 이보다 약 3~4배 빠른 1개월 만에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조업 경쟁력 향상 위해선 다양한 AI 기술 도입 필요

사실 제조업에 탑재된 AI 기술은 많아요. 특히 생산한 제품을 제대로 만들었는지 여부를 판독하는 머신비전 분야에 AI가 많이 탑재되고 있어요. 

올해 상장한 트윔도 AI 기반 검사 서비스 'MOAI'를 공급하고 있지요. AI 기반 머신비전은 단순 수량이나 치수 측정 이외에 비정형적인 균열과 손상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정형적 불량만을 검출하는 룰 기반 검사 서비스 대비 활용 가능 분야가 넓다고 합니다.

앞으로 제조업에 탑재되는 AI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배경한 지능형제조융합연구조합(KIDMA) 대표(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는 "앞으로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AI 활용한 데이터 분석, 진단, 예측 등의 기술 등이 필요하다"면서 "스마트공장을 고도화하려면 설비·자재 데이터 분석뿐 아니라 산업 환경과 시장 상황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조 분야에 AI 기술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요. AI 공급사는 공정에서 사용하는 데이터와 함께 어떤 AI 기술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요. AI 수요기업은 공정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정확한 개념과 전략을 세워야하죠. 



AI가 많이 쓰이는 예방정비도 마찬가지에요. 박상욱 열린기술 상무는 "AI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많이 필요하다"면서 "정확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서는 공급사와 수요 기업 간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AI 공급사와 수요 기업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공정에 필요한 AI 기술을 적용하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현재 제조 분야에 AI 기술이 적용되는 사례가 많아지는 만큼, 기술 도입 문턱은 점점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이고, AI 강국으로서 도약하고 있는 지금, 제조 분야만큼은 패스트팔로워가 아닌 퍼스트무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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